살아남은자의 슬픔 – 박일문







지은이 : 박일문


출판사 : 민음사


가격 : 5,600원 (알리딘 기준)


펀드맨 평가 : 별 넷반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지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 브레히트, で살아남은자의 슬픔と

어머니가 죽은 것은 전매청으로선 매우 애석한 일이다.

) 하루키적인 냉소적 거리감의 표현.

p.14


나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부족하고 변덕이 심한 편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조차 거의 애정을 기울이지 않는다. p.20


지금 나는 글을 쓴다. 뭐 대단한 글은 아니다. 연필을 들고 대한 노트 위에 손을 탁, 하고 얹으면, 가랑잎이 냇물에 소리 없이 떨어져 흘러가듯, 그런 글을 쓰고 있다. 그러니 나는 플롯이나 갈등, 묘사나 서술 같은 소설의 정공법은 모른다. p.21


타인의 육체가 접근하는 것을 싫어하면서 섹스는 싫어하지 않는다는 이율배반성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나는 모른다. p.23


내 삶에 있어서 어머니와 변비는 동일한 의미였는지 모른다.

) 가족개념의 붕괴.

p.25


내가 아니 에르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라라에 대한 글은 쓰지 않았을 것이다.

) で바람…と p.115

만약 데릭 하트 필드라는 작가를 만날 수 없었다면 소설따윈 쓰지 않았으리라고까지 말하려는 건 아니다.



나는 매사에 이런 식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기분이 나빠본 일이 없는 사람이다. p.27


이 이야기는 198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의 자기총괄서이기도 하다.

) で바람…と p.15

이 이야기는 1970년 8월 8일에서 시작되어 그로부터 18일후인 같은 해 8월 26일에 끝난다.

p.30


연극과 영화, 음악과 이념의 매니어가 되지 않으면 나의 존재 이유가 무의미한, 그런 열아홉이었다. p.33


두려움과 무서움은 몸으로 부단히 부딪히면서 스스로 극복되는 것이다.

낮에는 학교 도서관에서 이삼십 권의 책을 쌓아놓고 꽃에서 꽃으로 옮겨다니듯,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독법으로 책을 읽었다.

약력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장 주네처럼 도둑이었던 사람, 생 텍쥐페리처럼 비행기 조종사였던 사람, 랭보처럼 스무 살 때까지만 시를 쓴 사람, 게오르그 트라클처럼 마약으로 일생을 보낸 사람, 이반 골처럼 백혈병으로 죽은 사람, 잉게보르크 바흐만처럼 침대 위에서 타죽은 사람, 스베타예바처럼 자살한 여류시인, 예세닌처럼 혈관을 절단한 뒤 피로 시를 쓰고 목을 매달아 죽은 사람, 바타이유나 헨리 밀러처럼 몸이 허락하는 한 여자의 구멍에서 구멍으로 옮겨다니며 인생을 즐긴 사람, 혁명가 체 게바라처럼 평생을 도전 속에서 살다가 불리비아에서 총살된 사람, 장 꼭도 같은 천부적인 재능꾼, 제자와 동거한 노신 같은 사람, 굴원처럼 물에 빠져 죽은 시인, 파온이라는 연하의 청년을 짝사랑하다가 레우카디아 벼랑 위에서 바바에 몸을 던진 삽포 등등… p.34


저자의 살아온 삶을 읽고 난 뒤에는 책의 목차를 본다. 그리고 발행 날짜와 몇 판채 인쇄된 것인지를 본다. p.35


박과 나의 캐치프레이즈였다. p.37


모든 것은 완벽하다. 지금 내 앞에는 성냥과 담배, 그리고 뜨거운 커피가 있다. p.51


라라가 죽었다. 라라가 죽자 지구는 좀더 가벼워졌고,

) 하루키의 작품과의 유사부분.

예) 그렇게 해서 그녀의 죽음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육천구백이십이 개비째의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で바람..と p.80)


시간이란 참으로 빠르고 인간의 능력이란 참으로 경악할 만한 것이다. 시간 앞에서는 배신과 복수, 사랑과 증오, 그 모든 것이 무화되는 것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거기에 이 있는 것이다. p.53


그 후, 그녀는 문학이라는 나약한 인문주의적 덕성 속에 자신의 모습을 숨기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이론은 부단한 실천을 통해서 검증받는 것이다. 의식화 사업은 반드시 투쟁으로 연결되어야 하며, 그러한 투쟁은 마침내 조직화로 귀결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라라에게는 의식이라는 부분과 조직은 있었지만 그 매개 고리인 실천의 미숙으로 인하여 스스로 주저앉고 만 것이다. p.55


나는 내가 운동을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 그저 난 내 길을 갈 뿐이야. 옳다, 그르다는 판단도 없어. 그냥, 다른 것은 할 게 없으니까, 난 내 일을 할 뿐이야. 욕망도 열정도 감동도, 그 어떤 무엇도 없어. p.60


NL주사파에도 남한사회 성격을 식민지 반봉건사회라 주장하는 NL1이 있었고, 신식민지 (예속, 반) 자본주의라고 주장하는 NL2가 있었다. 반제반독점 강령을 내세우고 남한을 신식민지 국가독점 자본주의사회라고 분석하는 PD에도 PD1, PD2, PD3가 있었다. p.62


당면 변혁은 민족민주혁명이며 그 성격은 부르주아혁명이라고 주장하는 ND가 있었다.

서로를 비판하고 매도하는 분위기는 87년 대통령 선거와 88년 4월 총선 이후, 운동권의 극심한 본열에 원인이 있었다. p.63


후배 가운데 서클이 목적의식적으로 내 세우는 정파로 입장정리가 되지 않으면 스스로 탈퇴하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견딜 수 없는 압력에 고민하다가 제 갈 길을 가는 것이다. p.64


이 땅에는 양심적으로 살고자 했던 사람들이 수도 없이 죽어가는데 자신이 왜, 이 짐승의 시대에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다더군요. p.66


누군가 분신해서 죽으면 우리는 가늘고 길에 오래도록 살자고, 그래서 통일 되면 북한 인민 배우와 결혼해서 금강산으로 신혼여행 가지고, 운동이 수세로 몰려 사업이 잘 안 풀리면 , 아, 농담이라도 너무 심하지 않았는가. p.67


궁극적으로 모든 물질은 변화 발전하다는 철학적 근본문제에 대한 믿음만 확실하다면, 활동가는 민중과 역사에 대해서 낙관적일 수밖에 없어. p.72


당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관료주의가 체질화 되었어요. 기계적으로 생각하고 즉자적으로 움직이고, で국가와 혁명と 몇 페이지를 봐라, 너는 で고타강령비판と도 읽지 않았느냐, 당신은 모두가 그런 식이에요. 그런 식의 태도는 게발트(폭력)예요. 당신은 어떤 사업에나 원전, 원전을 들이미는 교조주의자예요. 당신에게는 생명이 없어요. p.75


자신이 먼저 구원받지 않고서는 아무도 구원할 수 없는 거예요. p.80


당신이 쓰는 글이 라라 자신에 대한, 자신에게로 향한 자기부정이고, 자기검증이고, 자기총괄이고, 자기성찰이기를 바래, 절대로 식의 작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봐. p.85


나는 나 자신의 실존에 대한 고민을 해 볼 겨를도 없이 변혁운동이란 물살에 휩쓸려들어가 버렸습니다. p.97


저는 그때 진실과 솔직함이 오히려 거짓보다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p.98


나의 이러한 요설이 당신의 가슴을 얼마나 울리게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 김현스타일의 어법. 예)요설, 울리게…

p.102


— 어떤 법을 닦아야 곧 해탈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 오직 돈오의 한 문으로만 해탈을 얻을 수 있다.


돈오라는 것은 리프(비약, 레블루션), 곧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의미한다. 변증법에 있어서 점진적인 양적 변화로부터 근본적인 질적 변화로의 이행, 즉 양질 전화의 법칙은 인간의 인식발전 단계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p.105


— 어떤 것을 돈오라 합니까?

— 돈이란 인식의 비약전 전환이요, 오란 얻은 바 없음(무소득)을 말한다. p.106


자기정리란 실천 속에서 하는 그것만이 가장 바람직스럽다. p.110


나는 롤랑 바르트식으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차변과 대변에 기록해 보기로 한다.

) で바람…と과 유사

p.114


부권의 타도를 꿈꾸고 모계 사회의 복귀를 희망하는 여자야. p.115


이 세 여인이 없었더라면 나는 결코 글 같은 것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p.131


나는 어머니가 죽었을 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것은 단지 나의 형식이다. p.132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들을, 왜 부끄러워하고 터부시하는가 알 수가 없어. 아마, 문화 수준이 천박해서일 테죠. 그러니까 섹스에 대한 이야기에 지성이라곤 찾아볼 수가 둁벗고 음담패설로 흐르지. p.149


무미건조하고 딱딱하고, 한껏 쿨하고 드리이하다. 언제부터 이렇게 삭막해졌을까.

) 하루키의 소설과 동일한 분위기

p.179


자기 성을 학대할 필요는 없잖아요. 성을 억압하는 기제가 해방되지 않고서는 인간다운 삶이란 없는 거예요. 왜 자신의 아름다운 육체를 감금하려고 하죠? p.182


지금 나는 아니 에르노의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나는 지금 라라의 죽음의 원인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해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내 어머니가 내 의식을 어떤 식으로 지배했으며, 내 삶에 어떻게 관계했는지를 이야기하자. p.213


플러그를 꽂고 리셋을 눌렀다.

) 플러그를 꽂았으면 스위치를 누르던지 파워를 눌러야지 리셋은 뭐하러 누르는가.

그렇게 해서는 PC를 켤 수 없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



나는 테트리스 블록을 깨어나가듯, 책들을 하나하나, 부수어나갔다. p.229


이 논문에는 아폴로적인 논리의 힘과 디오니소스적인 시적인 힘이 있는데

) Classicism & Romanticisim

p.231


붓다의 말씀.

정복한 나라를 버리고 가는 왕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p.288


일부러 인간적인 욕망을 피해 다니진 마세요. 그건 욕망의 탐닉만큼이나 추해 보여요. p.293


본질적인 삶을 산다는 것, 첨예한 고민을 한다는 것, 치열하게 산다는 것은 언제나 자신이 죽음에 대해서 대비하고 겸허하게 준비하는 거겠죠. p.294


바람이 분다.

역시……바람은 길에 어울리는 동료다. 바람이 길의 친구인 한, 길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길은 바람의 노래를 듣는다. 나는 그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

) 작가가 하루키의 で바람의 노래를 들어라と에 큰 영향을 받았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p.300


1980년대의 총괄을 하기로 하자. 그래야지만 나는 1990년대를 제대로 싸워 나갈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에 살아 남은 자들은 1980년대 역사의 현장에서 죽은 사람들에게 부끄럽다? 강요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평) 현실 없는 젊음의 치열한 현실 – 이남호


80년대 초반 우리사회는 父權으로 상징되는 기성질서에의 격렬한 거부와 해체를 보여준다. 그리고 80년대 후반에는 부권이 거세된 무질서한 공간 속에서의 편모슬하의 의식을 보여준다. p.308


90년대에 블어와서는 이제 사회적 질서의 기초적 토대인 가정이라는 개념 자체가 거부된다.

어머니가 자살하고 가정이 완전히 해체된 시점에서 20대를 시작하는 는 새로운 세대의 상징적 모습일 수 있다. p.309


기성세대들이 먹고 살기위해 사회적 관계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점을 이해하지 못함을 뜻한다. 아니, 이해할 필요를 느끼지 못함을 뜻한다. 극단적 경제적 결핍의 실존적 사회적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없는 세대이기에 그러한 개인주의적 의식이 가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p.310


널리 알려진 대로 사회적 금기의 기초는 성이다. 성의 통제로부터 사회적 관계와 질서는 시작된다. 그리고 기성질서의 해체는 성윤리의 붕괴를 수반한다. p.312


성관념의 극단적인 전복은, 이들 세대가 시회적 금기나 질서 그리고 관계로부터 완전히 일탉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 소설에서는 변혁운동의 대상이 되는 현실의 모순에 대한 탐구가 없다. 현실은 이미 선험적으로 혐오와 부정의 대상이다. p.313


와 마찬가지로 라라에게 있어서도 운동은 상황적 조건으로 주어진 것이며, 존재와 현실 밖에서 존재와현실을 장악하는 종교적 도그마와 같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들에게 있어서의 변혁이념이란, 모든 질서와 가치의 공백상태에서 어떤 그 무엇의 마니아기 되지 않으면 존재이유를 찾을 수 없는 세대에게 주어진 매우 강력하고 매력적인 형이상학적 구조물이었던 것이다. p.316


이 소설의 일차적 매력은 그 아름다운 방황의 진지함과 순수함에 있다. 그리고 그것을 묘사하는 발랄하고 경쾌한 문체의 맛에 있다. p.322


작가의 말 —


저에게 인식의 눈을 뜨게 해준 붓다.마르크스.레닌.모택동, 그리고 저에게 딱딱한 얼굴을 갖게 해준 벤, 메타 언어의 세계로 영도한 퐁쥬, 쉬운언어의 강함을 일깨워준 브레히트, 언어 속의 유토피아로 안내해 준 바흐만, 지적인 서정성을 만나게 해준 브로드스키, 그리고 제 삶을 다소 돈키호테적으로 이글어준 견자 랭보.휠더린.고호.고갱.밀레나.베이유.룩셈부르크 등, 지상에서 왔다가 사라진, 혹은 현존하는 수많은 돈키호테들에게 감사드립니다. p.324


지상에 유토피아는 없다. 그것을 네 언어 속에서 건설하라.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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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과 광기는 우리들의 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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