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역 노자키 – 일본 거품경제의 끝자락에선 은행의 운명

NewYork

일본 은행을 무대로, 거품경제속에서 신뢰를 잃어간 은행속 내부비리를 바로잡고 신뢰와 선의로서 은행내부의 분위기를 바로잡아 간다는 스토리. 한국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는것 같아서 흥미롭다.

제목 : 감사역 노자키
작가 : 료카 슈(Ryoka Shu) 글 · 시게루 노다 그림
출판 : 集英社(슈에이샤)
번역 : 학산문화사
그림 : ★★★
스토리 : ★★★★☆
알라딘 독자평점 : ★★★☆

감사역 노자키가 근무하는 일본 굴지의 아오조라 은행은 실존하는 일본은행이 배경이다. 필자처럼 금융기관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본 작품이 더더욱 가슴에 와 닿으리라 생각된다.

책 이야기를 하기전에 먼저 일본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하려고 한다. 최근 일본 문화 완전개방과 함께 일본의 영화, 드라마, 애니, 만화등이 직접적으로 우리 문화속으로 침투하고 있다. 그러나 30대 초반정도 이후의 세대에게는 일본 문화는 이미 새로운 것이 아니었고,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서 상당히 친숙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일본만화, 부산국제 영화제 오프닝 작품이자 매트릭스 등 헐리우드 SF의 TEXT라고 할만한 [공각기동대]와 이웃집 꼬맹이들도 다 알고 있는 [토토로]를 감독한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를 통해 이미 세계적인 수준인 애니메이션은 말할것도 없이, 만화 강국인 일본의 페이퍼 만화의 수준은 가히 30대 중후반 이후 기성세대의 상상을 뒤엎는다.

아마도 30대 중반이후 세대부터는 철들고 나서부터는 만화를 진지하게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또한 일본만화라고 하면 그저 폭력적이고 원색적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분들에게 한번쯤 추천하고 싶은, 죽기전에 꼭 봐야할 일본만화 100선을 꼽는다면 그 중에 당당히 들어갈 한편으로 감사역 노자키를 꼽을 수 있다. 특히 금융권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이 만화를 주목해 보자.

일본만화의 세상을 보는 깊이와 디테일은 왠만한 영화보다 훨씬 깊다. 자유로운 표현과 상상력이 담보되기 때문일까? 이 책은 일본이 거품경제의 시기를 거치면서 방만한 대출을 통해서 부실화된 아오조라(푸른하늘)은행이 공적자금의 수혈과 구조조정이라는 과정을 겪게되는 상황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

일선 지점장에서 어느날 갑자기 감사역으로 발령된 ‘노자키’는 다른 감사역들 처럼 세월 흘러가는대로 자리만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유치원에서부터 이미 배워서 알고 있을 법한 감사역의 역할에 교과적으로 충실하려 한다.

그 역할이란 곧 은행의 신뢰를 찾는 일이고, 고객의 신뢰야 말로 아오조라 은행이 다시 살아나는 길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은행장이라 하더라도 잘못된 부분은 명쾌하게 진실을 밝혀내고 고객앞에 떳떳해져야 한다는 신념을 향해 매진한다. “모든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참된 의미의 은행”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노자키의 신념이자 이 만화의 주제라 할 수 있다.

노자키가 생각하는 참된 의미의 은행이란, 단순히 ROE가 높고 자산구조가 건전한 은행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고객이 믿고 의지할 수 있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Win-Win하는 은행이 아닐까 싶다. 신입사원 시절 창구에서의 고민은 항상 고객에게 더 이익이 되는 상품을 팔 것인가? 회사에 이익이 더 많이 남는 상품을 팔 것인가 였다. 때론 기업의 입장은 이윤추구가 기본이 될 수 밖에 없겠지만, 길게 본다면 고객에게 최선의 이익을 안겨다 주는 것이야말로 결국은 그 고객이 회사를 믿고 평생고객화가 된다면 장기적으로는 더 큰 이익이 되는게 아닐까 고민했었던 시절이 생각나게 하는 그런 이야기다.

또 한 사건을 보자면 노자키는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투명한 회사를 만들고자 창립이후 최초로 총회꾼이 없는 주주총회를 이끌어간다. 이 책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건대 대부분의 주총은 회사측이나 그 반대측이나 모두 야쿠자를 끼고 실력대결을 행사하면서 일종의 쇼로서 진행되고, 그 사이에서 또 한번 금전이 움직이며 부정이 개입되는 구조인 듯 하다. 모두들 그렇게 하는 것을 당연시 하고 있지만, 노자키는 이상을 현실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상은 가까워지려고 노력하지 않는한 언제까지고 실현되지 않느다”는 주인공의 말을 되세겨 볼 일이다.

그외에 재미있는 부분은 아오조라 행장과 그 반대파의 세력다툼, 큰 조직에서는 자연발생적인 조직내 암투 같은 것인데 그것이 은행을 배경으로 진행된다는 점이 금융인에게는 매우 친숙(?)하게 느껴진다. 또한 행장과 정치권과의 유착관계와 그속에서 드러나는 비리들을 볼 수 있다. 이 모든 것 속에서 새로운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젊은 행원들의 새로운 움직임도 발견할 수 있다. 다소 신화적인 노자키의 도덕론이 때론 유치하게 느껴질 수 도 있지만 금융권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은행의 생리나 그 구조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또 그 산업내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시한번 참된 의미의 은행, 참된의미의 기업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2009년 1월, 2회독후 감상내용 추가]

감사역 노자키를 다시한번 읽었다.  수년만인데, 그것보다도 최근 일본 금융/경제에 관한 공부를 할 계기가 있어 일본의 80년대 버블과 90년대 버블붕괴를 소설이 아닌 사실에 근거하여 공부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읽어본 ‘감사역 노자키’는 이전에 읽었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 작품속에 녹아 있었던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먼저 가장 놀랐던 것은 감사역 노자키에 나오는 내용의 99%는 90년대 일본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을 재조합한 것이라는 점이다.  만화를 보면서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어디까지가 시대적 배경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인지 궁금할 것인다. 내가 본 바로는 99%가 실제 버블붕괴이후 일본 은행권에서 일어난 일을 재조합 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등장인물들도 대부분 실존인물을 모델로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주요한 등장기업 역시 일본내에서는 큰 이슈가 된 대형 은행 및 기업들 그자체를 살짝 살짝 바꿔놓았다.

스토리의 배경이 된 아오조라 은행은 일본신용은행이 외국계로 인수되면서 이름이 바뀐 실제은행으로, 일본신용은행이 아오조라 은행으로 바뀌는 당시의 실제 행장은 ‘혼마’라는 사람이며, ‘아오조라’은행의 탄생에 대한 프레스 릴리즈를 한 다음날 호텔에서 자살한 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이것을 두고 야쿠자들에 의한 타살이라는 설도 많이 있다. 즉, 실제로 스토리중에 나오는 아쿠자들의 은행원들에 대한 협박이나 폭행마저도 결코 단순한 재미만을 위한 요소가 아니라 현실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스토리중에 나오는 에치코 백화점은 Sogo 백화점을 그린것으로 보인다. Sogo백화점의 초대형 부실이 세상에 터지고 일본장기신용은행이 외국인 헤지펀드에 의해 ‘신생은행’으로 바뀐후 Sogo백화점에 대한 부채탕감을 거부함으로서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상황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마지막에 아오조라 은행이 합병을 추진하면서 ‘신일본은행’이라는 이름을 내 놓았는데, 이 역시 장기신용은행의 주인이 외국인으로 바뀌면서 이름을 ‘신생은행’이라고 한 것에서 힌트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아오조라 은행 핵심멤버들의 캐랙터를 살펴보면, 현재의 일본식 사무라이 뱅커라는 문화를 닮은 야나기사와 (야나기사와는 90년 버블붕괴 당시 재무부 관리의 이름었음) 라든지, 당시 일본은행내에서 저돌적인 Maverick으로 분류되어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으나 실제 행장추대를 하는 시점에서는 화합을 중시하는 일본문화와 맞지 않는다하여 패배를 맞본 실존 캐랙터와 닮은 다케다 전무 등등 어느한 구석 현실을 배경으로 하지 않은 것이 없다.

다시말해 90년대 잃어버린 10년을 겪은 당시 일본의 금융권 내부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감사역 노자키’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경제부처 관료와 은행 임원과 야쿠쟈의 담합도 공공연한 사실이었고.

80년대 버블기에 어떻게 버블이 확대재생산되었으며, 90년대 버블붕괴시에 개인과 기업들이 어떻게 고통을 받게되는지도 잘 나와있다. 전세계가 불황의늪에 빠진 2009년에 찬찬히 되짚어 볼만한 만화다.

마지막에 결국 자생노력이 실패하고 정부소유가 되버린 아오조라은행은 그후에 실제 현실에서처럼 외국계 벌쳐펀드에 매각되어 회생하는 스토리까지 전개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속에서 서방의 합리주의 경영과 일본의 전통적인 관계중심의 비지니스가 충돌하면서 은행이 다시 건전해 지는 과정, 그리고 외국인 투자자인 헤지펀드가 단기간에 얻어낸 10조를 넘는 엄청난 수익은 ‘먹튀’가 아닌가 하는 고민등…..재미난 소재는 더욱 많은데 말이다.

만약, 감사역 노자키를 별생각 없이 본 분들이 있다면 90년대 일본 은행권에 대한 실제 이야기들을 찾아보기 바란다.  더욱 재미있게 감사역 노자키를 보는 방법이 될 것이다.

당시의 실제상황이 궁금한 분들을 위한 책을 하나 소개하자면 ‘Saving the Sun’ by Gillian Tett가 있다. 감사역 노자키의 현실본이라고 생각하면 좋을듯 싶다. 미국의 저널리스트가 쓴 일본의 장기신용은행을 중심으로 본 90년대 은행회생에 얽힌 금융사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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